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정동극장 뒤 골목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2층 벽돌 건물, 중명전입니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에 큰불이 난 뒤, 고종황제가 편전으로 사용하던 곳이 중명전이었습니다. 그리고 1905년 11월,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불법으로 체결됐습니다. 그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1907년 이준 등을 헤이그 특사로 파견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에요 — 대한제국의 운명이 크게 갈린 현장인 셈입니다.
원래 정동 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다가 1897년 경운궁이 확장되며 궁궐로 편입됐고, 황실 도서관으로 쓰이다 1901년 화재로 소실된 뒤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로 재건됐습니다. 이후 1925년 다시 화재를 겪고, 외국인 사교클럽으로 쓰이다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는 등 굴곡진 세월을 보낸 끝에, 2007년 사적으로 덕수궁에 편입되었고 2009년 복원을 거쳐 2010년부터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이라는 전시관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화려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근현대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리를 조용히 걸어보는 의미가 큰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