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으로, 낭산 동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을 신라에 융합하는 데 힘썼습니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귀족들의 기반이 되던 녹읍을 폐지하는 대신 관료전을 지급했어요. 지방 통치를 위해 전국을 9개 주로 나누고, 중요 거점 5곳에 소경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통치 체제를 실질적으로 완성한 왕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