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지는 조선시대 경상좌도 수군의 총지휘자가 머물던 진영(좌수영)의 성터입니다. 남해안이 왜구 침입에 시달리자 조선은 부산에 경상좌수영을, 통영에 경상우수영을 두어 동남해안 방위를 나눠 맡겼습니다.
좌수영은 원래 남구 감만동에 있다가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직전 지금의 수영동 자리로 다시 이전했습니다. 지금 남은 성곽은 1692년(숙종 18) 좌수사 문희성이 개축한 것으로, 둘레 약 2,785m·높이 4m 규모에 영일문·호소문·주작문·공진문 네 개의 성문이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각에 문루의 북을 울려 성문을 여닫았다고 전해집니다.
우물 3개, 배수구 4개, 옹성·치성·보루까지 갖춘 방어시설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훼손됐습니다. 1972년 부산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됐고, 2014년 지금의 명칭("경상좌수영성지")으로 바뀌었습니다.